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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 미용실 누나 -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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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누나 - 하편

“와우, 이 아줌마 궁뎅이 빵빵한 것 좀 보소!” “육덕진 게 존나 맛있어 보이네. 흐흐.” 남학생 무리들은 미현을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음담패설을 뱉었다. 테이프로 결박된 미현은 표독스런 눈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더욱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듯, 입맛을 다시며 바지를 풀어 내렸다. 그중 몇몇은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치고 있었다. “어이, 김병수. 이 아줌마랑 섹스 했어, 안 했어?” “하, 하지…… 마, 하지 마……” 병수는 벌레처럼 꿈틀대며 남학생에게 손을 뻗었다. 이제 그의 입에서는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폐부가 짜부라진 듯 숨을 쉬기도 힘들었지만 병수는 포기하지 않고 애원했다.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했냐고, 안 했냐고? 대답 안 하면 이 아줌마 바로 벗겨버린다.” “아, 안 했어…… 그러니까 제발 하지 마.” “좆도 빨아줬는데 섹스를 안 했다고? 이 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지, 진짜야…… 그거밖에 안 했어. 제발 그만 해…… 누나는 남편도 있는데……” 그러자 남학생들이 일제히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렸다. “야, 들었어? 좆만 빨게 하고 따먹지는 않았대.” “이거 완전 병신새끼 아냐? 찌질이는 뭘 해도 찌질이구만.” “잘 됐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우리가 먼저 따먹어주면 되지.” 지독한 놈들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더욱 신이 난 것 같았다. 병수가 다시 말리려들자 또 발길질이 날아왔고 병수는 배를 걷어차인 채 신음했다. 그 모습에 미현이 화를 내며 꿈틀거리자 비열한 인상의 남학생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줌마, 병수새끼 좆 맛있었어?” “…….” “그렇게 맛있게 빨아놓고 왜 보지는 안 대줬어?” “…….” 테이프로 입이 막힌 이유도 있었지만 미현이 그저 노려보기만 하고 아무 반응을 하지 않으니 비열한 인상의 남학생은 발끈하여 두 학생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미현을 억지로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미현의 바지를 벗겼다. “병수야, 너 아줌마 보지 본 적 없지?” “아윽…… 윽……” “히히. 우리가 보여줄게. 잘 봐.” “하, 하지 말라고!” 바지를 벗긴 학생이 검정색 팬티까지 내려버리자 순식간에 미현의 엉덩이가 그 많은 남학생들 앞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육감적으로 물이 오른 풍만한 엉덩이를 본 학생들은 휘파람이나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하하, 쥑이는 구만. 존나 빵빵하네!” 남학생은 추접스럽게 웃으며 미현의 궁둥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그러고선 그녀의 엉덩이를 양쪽으로 벌려 병수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었다. “어때? 잘 보여?” “흑…… 흐흑……” 병수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병수가 본 적도 없는 누나의 몸을 그들이 억지로 유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과, 누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그를 너무도 괴롭게 하고 있었다. “히히, 다들 잘 봐! 병수가 못 먹은 아줌마 내가 먼저 따는 거!” “안 돼!” 바지를 벗어 내린 남학생은 미현의 가랑이 사이를 몇 번 주무르더니 그대로 발기한 물건을 곧장 그녀의 구멍 속으로 찔러 넣었다. 그러자 미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꿈틀거렸다. 병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야! 아악! 커억! 끅……” 남학생에게로 몸을 날려 덤빈 병수는 그 직후 수도 없이 많은 주먹세례를 받았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는 점점 의식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 “야, 기분 죽인다.” “유부 맛은 이런 맛이구나, 키키키.” 병수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본 광경은 그에게 있어 차라리 지옥에 가까웠다. 두 남학생의 물건을 입과 다리 사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현의 모습이 보였다. 두 구멍에 물건이 박힌 미현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이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다. “병수야, 일어났어?” 죽여 버리고 싶은 얼굴의 남학생이 병수에게 히죽거리며 물었다. “네가 자고 있는 동안 우리 아줌마 존나 따먹었어. 한 사람당 세발씩은 쐈을 걸? 근데 저 아줌마 존나 독하더라. 그렇게 쑤셔대도 신음소리 한 번을 안 내는 거야. 고삐리들한테 돌림빵 당하면서 흥분하는 모습 보이긴 싫은가보지, 히히히.” “…….” 병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현의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바라볼 수도 없었다. 이미 알몸이 되어버린 미현은 삽입을 당하면서도 남학생들의 손길에 온몸을 희롱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과 음부에 삽입하던 남학생들이 저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을 끝마치자 그제야 정적이 찾아왔다. “병수도 일어났으니 이제 얘기 좀 해볼까?” 입에 물건을 넣었던 남학생이 물건을 뽑고 물러나자, 미현은 바닥에 정액을 신경질적으로 뱉었다. 병수가 정신을 잃은 사이 그녀의 몸을 묶었던 테이프들은 이미 떨어져나갔지만 이제는 그녀의 몸 곳곳에 정액의 흔적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줌마, 기분 좋았지? 아줌마도 평소에 섹스 땡기니까 병수 좆 빨아주고 그랬던 거 아냐. 아무래도 병수 같은 찐따 새끼보단 우리 좆맛이 더 좋았을 텐데. 원한다면 우리가 앞으로 꼴릴 때마다 두고두고 구멍 잘 써줄게. 히히히……” “허접한 새끼들.” “뭐?” 미현은 코웃음을 치며 남학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것들이 뭐? 좆맛? 웃겨서 정말…… 쓰레기 행세는 있는 대로 다 하길래 얼마나 대단한걸 보여주려나 싶었는데 겨우 세발 싸고 다들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꼴이라니. 하여간 남자새끼들 허세부리는 건 애새끼나 어른이나 똑같아.” “…….” “미안해서 어쩌지? 난 너희 모두가 다 달려들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가는걸. 네 말대로 내가 병수랑 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너희들 모두 합친 것보다 병수 한 사람이랑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좆 크기도 하나같이 비리비리해가지고 병수 반의반만큼도 따라오는 놈이 없잖아.” “이 아줌마가 미쳤나?” 미현의 도발에 남학생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병수는 그가 미현에게 더 심한 짓을 할까봐 덜컥 겁이 났다. 미현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병수는 적어도 미현이 이 상황에서는 고분고분하게 굴어서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니네 수준으론 나 만족시키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아예 이 참에 아는 형들이라도 데려와 보지 그래? 같이 쓰레기처럼 몰려다니는 패거리가 있을 거 아니야?” “하, 하하하. 미친년. 오냐, 그래. 소원대로 해줄게. 딱 각오해. 동네방네 다 데려와서 아주 그냥 보지를 너덜너덜하게 해줄 테니까.” “좋을 대로.” 자존심이 상한 남학생은 이죽거리며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억지로 그녀의 입에 물건을 처박았다. 하지만 이미 쪼그라든 물건은 입안에 들어갔다고 해서 커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힘없이 비실대는 물건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현은 그 번데기 같은 것을 입에 문 채로 냉소적인 웃음을 날렸다. 그러자 남학생은 눈이 뒤집어져 그녀를 바닥에 엎었다. “이 씨발년이!” 그리고는 미용실 구석에 놓여있던 빗자루를 가져와 사정없이 그녀의 엉덩이를 내려쳤다.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학생들이 그녀를 위에서 짓눌렀고, 모욕을 받은 남학생은 그녀의 엉덩이에 끊임없이 매질을 가했다. 병수가 기겁하여 달려들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짜악! 짜악! 짜악! “돌림빵이나 당하는 개걸레 주제에! 다시 한 번 지껄여봐!” 이성을 잃은 남학생의 매질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 “어이, 김병수. 신고하면 알지?” “…….” “우리 내일도 와서 아줌마 따먹을 거니까 보고 싶으면 너도 오던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남학생들은 킬킬거리며 무리지어 미용실을 나갔다. 병수는 공포로 울렁이는 심장을 억누르며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있는 미현에게로 다가갔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너무도 겁이 났다. “누, 누나…….” 지옥 같았던 시간이 결국 모두 끝나고, 그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병수는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처참하게 유린당한 미현의 몸에 병수가 떨리는 손을 얹자 미현은 다행히도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누나…… 저, 저는……” “…….”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병수의 얼굴을 미현이 마주보았다. 미현의 눈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는 것은 몇 달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병수는 감히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누나.” “병수야.” 미현의 입이 열리고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병수는 그녀의 말을 차라리 듣지 않길 바랐다. 무슨 말이든 간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뒤이어 이어진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따끔한 주먹질이었다. “누, 누나.” “어휴…… 이 등신 같은 새끼가 진짜.” 병수의 머리를 쥐어박은 미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욕설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그저 돌아서서 주섬주섬 옷을 입기만 하는 미현을 보니 병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누나……”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집에 가.” “…….” “그리고 다시는 여기 올 생각하지 마.” “…….” 병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입을 달싹거리던 병수는 결국 힘없이 일어섰다. 미현을 그대로 두고 나오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비참하게 느껴져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 며칠이 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현이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는 오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들었지만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미현이 그 무리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진 않았을지 생각을 하면 속이 미친 듯이 울렁였다. 지난 며칠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더더욱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를 괴롭히고 미현을 윤간했던 남학생 무리들이 학교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등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병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들고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까? 그랬다간 그 놈들이 복수를 할 텐데…… 만약 진짜로 사진이나 동영상이 퍼지기라도 하면……’ 미칠 것만 같은 갈등과 두려움 속에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병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미용실로 향했다. 딱히 무언가를 어떻게 해결해 보겠다는 계획도 없이 그는 무작정 미용실을 찾아갔다. 지극히 무모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 하지만 그가 미용실 앞까지 다다랐을 때, 유리창 너머로 본 것은 전혀 의외의 광경이었다. 그 작은 미용실 안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병수는 혹시라도 정말 남학생들이 패거리를 데려온 것인지 덜컥 겁이 났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그 중에는 나이 많은 어른들도 여럿 있었다. “에구, 선생님…… 제발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병수는 차마 미용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에 서서 목소리를 엿들었다. 유리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심지어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바깥에 서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자신을 괴롭혔던 남학생 무리 중 몇몇도 있었는데, 그들은 병수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시선을 하나같이 피했다. “저희가 아들놈 교육을 제대로 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어린놈 가엾게 여기셔서 제발 한번만 선처를…….” 미용실 안에서는 몇몇의 어른들이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바깥에 서있는 어른들도 저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병수는 그 어른들이 남학생 무리들의 부모임을 알았다. “자자, 서에 가서 얘기해야하니, 다들 나가주세요.” 제복을 입은 경찰들까지 인파를 헤치고 나타나자 병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경찰들이 미용실 안에 모인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나자 그제야 그곳은 평소처럼 조용해졌다. 병수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서니 미현의 시선이 그에게로 잠깐 머물렀다. “오지 말라고 했는데, 또 뭐 하러 왔어?” “누, 누나…… 어떻게 된 거에요?” 미현은 잠깐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등을 돌리고선 말했다. “신고했지. 경찰에.” “네?” “그 때부터 저것들 부모들이 몰려와서 몇날며칠을 애걸복걸해대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뭐 평소에도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그럼……” 병수는 너무도 혼란스러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큰 걱정을 꺼냈다. “그랬다가…… 그 애들이 복수한다고 사진 같은 것들 퍼뜨리면요……?” “그래서?” “네?” “그게 무서워서 저놈들이 하라는 대로 할 거야? 평생?” “…….” 미현은 병수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다가, 결국 돌아서서 그를 마주보고 머리에 손을 얹었다. 병수는 떨리는 눈으로 가만히 그녀가 하는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병수야……. 아줌마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까 이거 하나만 말해둘게. 순진한 거랑 어리석은 건 다른 거야. 살다보면 이것보다 더 심한 일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용기를 못 내서 짓밟히기만 하면 넌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쟤네들이 그렇게 무서워서 당하고, 보복당할까 무서워서 또 당하고, 당하는 게 무서워서 또 피하기만 하면 도대체 뭐가 해결되겠니?” “…….” “아줌마는 더한 일도 겪어봐서 이따위 것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릴 수 있어. 하지만 네 동생은 어쩔 거야? 애꿎은 네 동생은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갈 텐데 너는 기껏해야 네 또래 애들이 무서워서 걔네들이 원하는 대로 질질 끌려 다니고 그럴 거야?” “흐, 흐흑…… 그렇지만……”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병수를 미현은 품에 끌어안았다. 밤톨 같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면서도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멍청하게 짓밟히면서 살지 마. 남들 머리 위에 서진 않더라도 바보같이 당하면서 살진 말아야지. 그거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야. 네가 용감해지지 않으면 평생 그 모양일 수밖에 없는 거라구. 아줌마 말 알겠니?” “네…….” 눈물은 오래도록 하염없이 흘렀다. * “지워.” “뭐?” 병수가 손을 내밀며 대뜸 그렇게 말하자 비열한 인상의 남학생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반문했다. 병수는 그가 어제 미용실에 부모와 함께 찾아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동생 사진이랑 동영상 다 지우라고.” “뭔 소리야?” 병수는 이를 악물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기습적으로 얼굴을 얻어맞는 남학생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 병수에게 덤벼들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격투기를 배웠답시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놈이라 병수는 그가 덤벼들자 저항하지 못하고 얻어맞기 바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놈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다. “지우라고, 새끼야!” “무슨 개소리야, 씨발새끼야! 그 아줌마 때문에 벌써 다 지운 거 몰라?” “뭐?” “그 아줌마가 우리 엄마, 아빠랑 합의할 때 빵에 안 보내는 조건으로 경찰 몰래 그거 싹 지우게 했잖아. 그것 때문에 엄마 아빠가 알게 돼서 요새 집에만 가면 얼마나 깨지고 있는데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구만 갑자기 무슨 뒷북이야, 이 새끼야!” “…….” 미현이 그런 일까지 했을 줄은 몰랐기에 병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이내 이가 으드득 갈렸다. 그는 온힘을 다해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들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열 받는다고? 이 개새끼야! 너희 새끼들 때문에 내 동생은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네가 열 받는다고?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죽어! 죽어! 죽어!” 그를 바닥에 눕히고는 병수는 필사적으로 주먹세례를 날렸다. 하지만 이내 다른 학생의 발길질이 날아왔고 뒤이어 병수는 집단 린치를 당했다. 구타를 뒤집어쓴 병수가 잠잠해지자 그들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 그 날 밤, 병수는 미리 미행해두었던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고 그 남학생이 나타나자마자 병수는 그 얼굴을 사정없이 야구배트로 가격했다. 코가 으깨진 놈이 나자빠지면서 안쪽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그의 부모가 나타났다. “뭐, 뭐야! 강도야?” “경찰에 신고해!” 놈의 가족들이 소란을 떨며 요란스럽게 움직이자 병수는 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코뼈가 뭉개진 그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하도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멍하니 병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네 부모님이 신고하지 못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경찰들이 오면 나는 너희들이 내 동생에게 저질렀던 짓들을 다 밝힐 테니까. 이미 증거자료도 다 가지고 있어.” “우, 웃기지 마. 그럼 네 동생 앞으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될 걸?” “내가 못 할 것 같으면 네 엄마가 경찰 부르게 놔둬.” “…….” 놈은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뭐라고 웅얼거렸다. 자초지종을 들은 놈의 부모는 순식간에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병수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아, 아이고…… 학생. 미안해요. 우리가 애를 잘못 키웠어요. 제발 한번만 용서해줘요.” “제 동생 사진 다 지우라고 하세요.” “그, 그거…… 미용실 아가씨랑 합의 보면서 벌써 다 지우라고 했는데……” “컴퓨터나 드라이브에 남아있는 것도 빠짐없이 다 지우게 하라구요.” “커, 컴퓨터? 드라이브? 그게 뭔지…… 얘, 얘, 뭔지는 몰라도 빨리 하라는 대로 해!” “아이씨! 그거 벌써 다 지웠다니까.” “너 같은 새끼 말을 어떻게 믿어? 컴퓨터랑 핸드폰 싹 내놔.” 병수는 기어코 놈의 방을 뒤져 하드를 샅샅이 수색한 다음에야 사진이 없음을 확인했다. 놈은 병수가 집안을 뒤지는 동안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 집을 나서며 병수는 마지막으로 놈에게 덧붙였다.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내 동생 얘기가 나오면 너희들 전부 감방에 처넣고 말거야. 소문이 나든 말든 상관없어. 내 동생도 너희들이 벌 받길 바랄 테니까. 알겠어?” “…….” “왜 대답이 없어, 이 개새끼야! 지금 당장 경찰서로 갈까!” 병수가 야구배트를 휘둘러 문짝을 쾅 하고 내리치자 놈이 움찔거렸다. “알겠다고, 씨발…….” 그동안 놈에게 수없이 구타를 당하고 괴롭힘을 받을 때마다 놈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도 두렵고 무서웠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저 역겨운 얼굴을 보는 것이 무섭거나 하지 않았다. 왜 진작 용기를 내지 못한 걸까…… 병신 같이. “하, 학생, 미안해요, 미안해요…….” 끝까지 애걸복걸 매달리는 부모의 손길을 뿌리치고 병수는 등을 돌렸다. * “누나……?” 그 후 병수가 미용실에 찾아갔을 때, 미현은 분주히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박스로 포장된 짐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병수는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어, 어디 가는 거예요?” “어디든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야겠지. 가뜩이나 없던 손님이 그 소문 퍼지고 나서 아예 씨가 말라버렸으니.” 경찰에 신고하고 합의를 보는 선에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미현의 소문이 온 동네에 퍼져버렸다. 인터넷에 기사까지 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병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그녀에게 애원했다. “누나, 가지 마세요.” “얘가 왜 이래?” “소문은 무시하면 되잖아요. 누난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성격이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가지 마세요.” “내가 신경 쓰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너 같으면 손님 하나도 없는 가게를 지키고 싶겠니? 사실…… 꼭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예전부터 이렇게 무료하게 지내는 거 싫었어.” “제, 제가 자주 올게요.” 하지만 미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머리를 또 한 차례 쥐어박았다.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자주 오긴 뭘 자주와! 그 난리를 치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숙인 병수는 애꿎은 발끝만 계속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미현이 짐을 싸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병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어차피 신고할 생각이었다면…… 왜 처음에 그 애들한테 당해준 거예요?” “처음에 신고했다면 내 소문이 아니라 네 동생 소문이 퍼졌겠지. 지금도 보다시피 경찰 조사를 받다보면 싫어도 소문이 나게 돼있으니까. 그 상황에서는 신고해봤자 나올 만한 얘기가 너나 네 동생 일밖에 없었잖아. 내가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시한건 네 동생 이야기가 아니라 그날 여기 찍힌 영상이었어.” 미현은 미용실 짐을 모아둔 더미에서 무언가 하나를 집어 보여주었다. 병수는 그것이 천장에 부착되어 있던 CCTV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이 코딱지만 한 미용실에 훔쳐갈 게 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너무 구석진 곳에 있다 보니 불안해서 예전부터 하나 마련해뒀던 거야. 여기에 그날 찍혔던 영상은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자료가 되었으니 그 집 부모들은 당장에 달려와서 빌 수밖에 없었지. 괘씸하게도 미성년자 놈들이라 감방에 보낼 수가 없으니까 나도 뭐 합의하는 선에서 끝내준 거지만.” “거짓말하지 마세요…… 제 동생 때문에 신경 쓰여서 합의해 준 거잖아요. 다 알고 있어요.” “웃기지 마. 합의금 몇 푼 받는 게 차라리 더 나으니까 그런 것뿐이야.” “결국 저나 제 동생 때문에 일부러 당해줬다는 거잖아요……. 전 진짜 쓰레기 같은 놈이에요. 애초에 제가 누나를 몰랐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예요.” 말하다보니 감정이 복받쳐 결국 또 눈물이 울컥 터졌다. 그 모습을 보는 미현의 입에서도 또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그녀는 옮기던 짐을 내려놓고 다가와 병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지 좀 마. 사내자식이 왜 자꾸 징징 짜는 거야?”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 저 때문에……” “미안하면 누나랑 약속해. 앞으론 바보같이 살지 않기로. 그리고 제대로 된 친구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거야. 그거 다 네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거야. 알겠어?” “…….” “약속 안 할거야?” “알겠어요…….” 병수는 아무런 말도 더 하지 못하고 그저 미현을 따라서 짐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하도 짐이 없어서 몇 가지 꾸릴 것도 없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이 미용도구들이었다. 박스들을 쌓아놓은 채로 주변이 한산해지자 미현은 병수와 함께 나란히 샴푸대 위에 앉았다. 병수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추억이 머물러있는 바로 그 장소였다. “자꾸 그렇게 죽을상 하고 있을래?” “누나는 괜찮아요? 그런 일을 겪고도…….” “괜찮지 않을 건 또 뭐야?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면 그만인 거 아니야?” “그, 그래도…….” “왜? 그런 쪽팔린 일을 당했으니까 혀 깨물고 죽기라도 할까? 아줌마가 말했지. 살다보면 더 심한 일도 얼마든지 있다고. 싫은 일들은 그저 욕 한바가지 해주고 빨리 넘겨버리면 돼. 너도 이번에 반성한 게 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야.” “누나가…… 나 때문에 이사 가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파요.” “…….” 유리창 너머로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현은 병수를 돌아보며 풋 하고 웃었다. “그거 알아? 나 이혼할 거야.” “네?” 병수가 너무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하지만 미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엊그제 남편이랑 한 달 만에 통화했거든. 뭐 아직 정식으로 서류 쓰진 않았지만 말이야.” “왜, 왜요……? 갑자기?” “쪽팔렸나보지. 내가 얘기했거든. 어쩌면 기사를 보고 그 전에 알았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제 창피해서 나랑은 엮이기 싫대.” “아,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바보야.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부들이 다 알콩달콩한 게 아니야.” “네……?” “암튼 그러니까 난 어차피 여기서 계속 있을 수가 없었어. 이 미용실도 남편이 해줬던 거니까. 조금 있으면 헐값에 팔리고 다른 용도로 쓰이겠지.” “…….” “너한테 미안해하라고 이 얘길 해주는 게 아니야. 이게 나한테도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는 걸 네가 알았으면 해서 얘기하는 거지. 난 어차피 남편에게 먼저 갈라서자고 얘기할 용기가 없었으니까……. 이 쪼그만 미용실에서 하루하루를 똑같이 보내는 게 너무 싫었는데도 아무 결심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았지.” 그러면서 미현은 키득 웃음을 터뜨렸는데 병수의 귀에는 그 웃음이 퍽 자조적으로 들렸다. “어때? 아줌마도 꽤 용기 없는 사람이지? 그러니까 용감해지라는 말은 어쩌면 너에게만 했던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럼…… 이제 누난 어디로 갈 거예요?” “글쎄. 예전처럼 도시로 나가서 취직이나 해보지 뭐. 나이가 많아서 힘들 수도 있지만.” “누나가 계속 미용실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딜 가든……” “왜?” “누나가 다시 머리를 잘라줬으면 좋겠어요.” 미현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조금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병수를 돌아보는 미현의 얼굴엔 왠지 모를 미소 한 줄기가 걸려있었다. “여기 앉아봐.” 미현은 의자에 병수를 앉히고는, 아직 박스에 넣지 않은 몇 안남은 도구들을 가지고 병수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병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이것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나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쉬워요.” “여기가?” 미현은 가위질을 하다말고 손을 내려 병수의 바지 앞쪽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병수는 그 와중에도 얼굴이 붉어져 대답했다. “그, 그런 뜻이 아니구요.” “이제 아줌마한테 관심 뚝 떨어지지 않았어? 그런 지저분한 일 당하는 모습까지 봤으니 꺼림칙하게 느껴질 텐데.” “왜…… 그런 말을 해요.” 병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현을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기습적으로 입술을 덮었다. 미현이 채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미현의 입술을 물고 빨았고, 두 팔로는 으스러져라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누나.” “왜 이래, 갑자기.” 입술이 떨어지자 미현은 징그럽다는 듯 툴툴거렸다. “전 누나가 좋아요. 누나가 유부녀였을 때도 좋아했고…… 지금도요.” “…….” 철도 없고, 무드도 없는…… 오로지 용기 하나만 앞서는 고백이었다. 미현은 한숨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론 자조 섞인 웃음이 나오는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너 방금 그거 첫 키스지?” “어, 어떻게……” “딱 보면 알 수 있어. 멍청아.” “…….” “나중에 후회할 거다.” “왜요?” “첫 키스가 얼마나 뜻 깊은 건데 나 같은 할망구에게……” 하지만 미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수는 그녀에게 다시 세차게 키스를 퍼부었다. 기술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과격한 키스세례에 미현이 성질을 바락 냈다. “아휴, 진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전혀 후회 안 할 거라구요. 누나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알았다고.” “그리고 누나.” “뭐?” “저…… 다른 첫 경험도 누나랑 하고 싶어요.” “…….” 잠깐 말문이 막힌 미현은 아니나 다를까 병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시끄러워.” “저는 누나가 정말 좋아요. 절대로 후회 안 할게요.” “너는 지금 이 난리를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누나가 그랬잖아요. 싫은 일들은 빨리 넘겨버리면 된다고……. 누나랑 이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헤어지기 싫어요.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고 싶어요.” “…….” 쪼끄만 한 게 말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현의 입에선 좀체 싫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미현이 그저 등을 돌리자 병수는 뒤에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야, 뭐하는 거야?” “항상 누나 생각만 했어요.” 그제야 미현은 병수의 키가 자기보다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에서 몸을 끌어안는 그 손길도 생각보다 억세고 컸다. 병수의 손이 아주 천천히, 가슴을 주물러 오는데도 미현은 차마 그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대로 굳어지자 병수의 숨결이 더더욱 뜨거워졌다. “야…… 너 이러면 나중에……” “후회 안 해요.”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그 손은 아주 서서히, 바지의 단추를 풀고 안으로 들어와 속옷을 지나서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곳에 닿았다. “누나……, 여기 젖었어요.” “이, 이 등신아. 거긴 원래 젖는 거야. 네가 딱히 잘나서 젖는 게 아니라.” “정말요?” “어휴…….”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해빠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저 한숨만 나왔다. “여기 누워봐.” “네?” 샴푸대를 가리키자 병수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고분고분 샴푸대에 눕자, 미현은 왠지 조금 떨리는 손으로 그의 바지를 아래로 내렸다. 꽤 오랜만에 보는 듯한 그 우람한 물건이 공중으로 퉁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너 그거 알아?” “네……?” “그놈들 꺼 다 합친 것보다 네 자지가 훨씬 더 커. 정력도 네가 백배 좋고.” “…….” “그러니까 자부심 가지고 살아. 너보다 못한 찐따들에게 당하고 살지 말고.” “네…… 그럴게요.” 미현은 반듯하게 누운 병수의 몸 위로 깔고 올라가 옷을 하나둘씩 벗기 시작했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병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래위로 옷을 벗어던진 미현은 속옷만 남겨둔 채로 알몸이 되었다. “분명히 네가 좋다고 했어. 내가 동정 떼먹어도 나중에 딴소리 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네…… 네, 네, 네!” 마치 처음 그녀와의 해프닝이 있었을 때처럼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는 그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기대감에 들뜬 병수를 두고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병수가 다급하게 물었다. “누, 누나. 어디 가요?” “멍청아! 커튼 쳐야 할 거 아니야!” 미현의 호통소리와 함께 미용실 문이 닫혔고, 유리창에 커튼이 드리워졌다. * 그 후로 몇 년이 흘렀다. 미현은 서울로 올라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인 미용실에서 디자이너가 되었다. 비록 가진 게 없어서 월세를 내가며 살아야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이는 많았지만 성실히 일한 덕분에 갈수록 단골들도 생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급도 점점 오르게 되었다. 아파트 상가에 딸린 조그마한 미용실에서 지냈던 시간은 옛 추억으로 접어둔 채, 그녀는 새로이 맞이한 바쁜 일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분주하게 일하는 도시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추억은 희미하게 옅어져갔다. “오늘따라 길거리에 학생들이 왜 이렇게 많지?” 바람이 세차게 불던 어느 날이었다. 미현은 최 실장이 출근하며 툴툴대는 소리를 듣고 창밖을 힐끗 내다보았다. 실장의 말대로 길거리엔 온통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애들 수능 쳤잖아요. 이제 한동안 시끌벅적하겠죠.” “아, 그러네.” 동료 디자이너들의 말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미현은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기억 속에 빠져들었다. 교복이라……. 하긴 내게도 교복이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미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 나이 때 애들은 좋겠다. 생각 없이 놀 수도 있고.” 확실히 좋을 때이긴 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십대들의 그 모습에서는, 오직 그 때에만 지닐 수 있는 젊음의 활력이란 것이 가득 느껴졌다. 미현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꼬맹이도 물론 그랬었다. 그 녀석은 너무 젊음으로만 가득해서 문제였지만……. ‘그 애도 이미 예전에 수능을 봤겠지? 대학은 잘 갔으려나.’ 공부가 안 된다며 찾아와 징징거리던 모습을 생각하니 오래 지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실소가 터졌다. 그러면서 누나가 제일 좋다느니 뭐 그런 말들을 했었지. 아마 지금쯤이면 그 꼬맹이도 건장한 대학생이 되어서 그 때의 기억쯤은 추억으로 삼고 있을 테지만. “뭐 좋은 일 있으세요?” 파트너로 일하는 견습생이 미현에게 불쑥 물었다. 미현은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지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견습생은 시계를 가리키며 미현에게 말했다. “30분 뒤에 예약 고객님이 있으신데, 지금 새 고객님 한 분이 오셨어요. 시간이 빠듯하시면 다른 디자이너 분께 맡길까요?” “30분이면 커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일단 자리로 모셔봐.” 견습생이 손님을 자리에 앉히고 가운을 두르는 동안 미현은 도구들을 준비했다. 남자 손님이 앉은 자리에 다가간 미현은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커트하실 건가요?” “아뇨. 커트를 하려고 온 건 아니고…….” “아, 그럼 어떤 시술을……?” 남자 손님은 바깥에서 바람결에 헝클어진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앉은 손님과 서있던 미현의 눈이 서로 허공에서 마주쳤다. 미현은 그 무모하고 객기 넘치는 눈동자를 왠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서울바닥의 미용실을 다 돌아보고 있어요. 찾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네?” 영문 모를 소리에 미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행히 오늘에야 그 사람을 찾은 것 같네요.” “…….” 그 수줍은 미소가 묻어두었던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목소리가 굵직해졌고, 체격도 듬직해졌고, 말투에 자신감도 붙었지만…… 그 어수룩해 보이는 미소만큼은 예전 그대로였다. “멍청이.” 결국 미현은 참지 못하고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터뜨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