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 4부
이른 점심을 먹고나와 바로 옆에 있는 모텔로 향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년은 침대 모서리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년에게로 다가가 그년을 일으켜 세우고 가만히 안았다. 그리고 나의 입술을 그년의 입술에 살짝 맞추니 그년은 입술을 벌려온다. 혀로 그년의 이빨을 간질이듯 하니 그년은 입을 벌리고 혀로 나를 맞는다. 한동안 서로의 혀를 탐하다가 그년의 카디건을 벗기고 블라우스 단추를 풀다가 ‘아차’하는 느낌이 머리를 스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무리 남자 경험이 많더라도 새로운 남자가 옷을 벗기게 되면 그 순간 약간의 떨림이 있는데 이년은 아예 그것이 없었다. 아무리 마음을 먹고 들어온 모텔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여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순간적으로 ‘좆 됐다.’라는 그런 느낌…….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여기서 끝을 내는 것은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니 난 그년의 옷을 하나하나씩 벗겨가며 그년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속옷만 남겨둔 채 난 그년을 침대로 이끌고 그년은 눈을 살며시 감은 상태로 내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그년의 몸 위에 엎드려 몸을 붙인 채 이마에 입을 맞춘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지금이라도 불편하면 그냥 나가고요.”
그년은 대답대신 내 등을 꽉 안아왔다. 솔직히 약간의 망설임이나 거부하는 몸짓이 있었다면 난 그것을 핑계로 그 자리에서 도망을 나오고 싶었다. 닳고 닳은 여자라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행위지만 원나잇 상대도 아닌, 앞으로 계속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 댈 수밖에 없고, 오늘의 이 행위로 하여 결국은 애인처럼 지내야 할 수밖에 없는데 처음 관계를 가지는 남자와의 행위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움을 보이는 이년의 몸 반응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기에.
그년의 반응에 난 이마에 있던 입술을 살며시 감은 그년의 눈으로 옮기고 약간 바깥으로 삐져나온 눈썹을 혀로 핥아갔다. 그년의 눈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이 전해져온다. 혀는 다시 그년의 눈에서 귓불로 향했다. 귓불을 혀로 쓰다듬듯 훑어 내리다가 귓바퀴의 골을 따라 혀를 움직이면서 입김을 살짝 불어 넣자 ‘아~흥’하는 신음과 함께 몸이 들썩거린다. 내 등에 올려 진 그년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내 등을 압박해온다. 나 역시 그년을 꽉 안으면서 우리의 상체는 공기조차 빠져나갈 틈이 없이 완전히 밀착되었다. 그년의 몸이 서서히 뜨거워져 온다.
그년의 귓불에서 혀를 아래로 내려 그년의 목덜미를 자극하면서 머리와 목이 만나는 경계지점인 솜털이 나있는 부분을 서서히 핥아갔다. 사실 남자가 있는 여자를 상대할 때는 난 그곳이 여자의 성감대중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한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능한 그곳을 피한다. 그럴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그 상대가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가 나타나게 되면 나 역시 평상심을 잃고 격한 행위를 하다가 결국 여자의 목덜미에 이른바 키스마크라 불리는 흔적을 남기게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자칫하면 한 가정에 불행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혀의 움직임에 따라 그년의 살들이 반응을 보이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도 들썩이기 시작하면서 내 등을 안고 있는 그년의 팔의 힘도 점차 강도를 더해갔다.
"하~윽 여~보"
그년은 연신 신음을 흘리며 내 손길, 내 혀의 움직임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척 예민한 여자다. 등 뒤로 손을 돌려 그년의 브래지어 후크를 풀고, 난 그년의 봉긋한 가슴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덩치에 비해 작은, 무리를 한다면 한입에 가슴 한쪽을 다 넣을 수 있을 정도의 가슴이지만 40대 중반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탄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자기야~ 내 가슴 너무 작지? 하~악!"
흥분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슴이 콤플렉스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가슴을 입에 물고 있다가 혀끝으로 유두를 살살 간질이고, 또 덥석 베어 물고, 그리고 한 손으로는 반대쪽의 가슴을 부드럽게 문지르면서 그년의 반응을 살펴갔다. 가슴은 반응이 시원찮았다. 결국 자신 스스로 느끼는 콤플렉스 때문에 가슴 쪽의 성감이 감퇴되었나 보았다. 입을 그녀의 겨드랑이로 옮겨갔다. 깔끔하게 제모가 되어있는 겨드랑이……. 사실 난 거웃처럼 삐쭉삐쭉 털들이 솟아나 있는 그런 겨드랑이를 좋아하는데…….ㅠㅠ
혀끝으로 겨드랑이 중심을 살짝 건드리자 몸이 움찔한다. 여기가 그년이 많이 느끼는 장소였다. 정성스레 그녀의 겨드랑이를 혀로 핥고 입술로 문질러주니 그년의 몸이 움찔거리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년의 들썩임에 자극을 받은 내 물건 역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고, 그 느낌을 알아챈 그년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몽둥이를 자신의 계곡 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하~앙~ 아~ 자기야~ 아래~ 좀"
그 말을 하고선 어느새 등에 있던 손을 엉덩이까지 내려서 내 팬티를 벗기고 있었다. 무지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하긴 아예 반응이 없는 여자보다야 적극적인 여자가 훨씬 섹스를 나눌 때 마음이 편하고 그 행위의 끝에 나타나는 허무감도 훨씬 줄여주니 이른바 불감청고소원일 것이다. 이제 그년 스스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으니 더 이상 내가 망설일 하등의 이유는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적극성을 보일 시간이 되었다.
가슴을 애무하던 입술과 혀의 강도를 조금 더 높이면서 난 손을 내려 그년의 팬티를 잡았다. 그년은 엉덩이를 살짝 들고 내가 자신의 팬티를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발목까지 팬티를 내리자 그년은 잠시의 시간도 참지 못하겠는지 발을 움직여 팬티를 벗어 던지곤 손으로 내 물건을 잡아 그년의 계곡으로 인도했다.
귀두의 끝이 계곡 입구에 다다르자 이미 흥건하게 젖은 그녀의 계곡이 느껴진다. 살짝 몽둥이에 힘을 주고 계곡 입구를 쑤시니 그년이 엉덩이를 번쩍 치켜든다. 완전히 내가 당할 뻔한 상황…….ㅋㅋ
"자기 왜 그래?"
"뭘?"
"안 해줄 거야?"
"서두르지 마 천천히……."
서두르던 그녀를 제어하곤 난 머리를 아래로 내려 그년의 배꼽으로 내 입술을 옮겨갔다. 혀끝을 세워 배꼽을 살짝 건드리니 그년의 몸이 다시 한 번 튀어 올라 내 가슴에 그년의 치골이 부딪는다. 그년은 다리를 양껏 벌려 계곡을 내 가슴에 대고는 엉덩이를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음수가 질질 흐르는 계곡을 스스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앙~ 미치겠다. 여보~ 나 좀~"
그년은 이제 자존심도 다 버린 채 발정난 개 마냥 내 몽둥이를 자신의 계곡에 쑤셔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여보 좀 넣어줘~"
"임마 내가 와, 니 여보고? 니 여보는 지금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잖아."
"아~잉~ 자기야~ 나 좀~."
"기다려."
"아항~ 나 죽겠어. 좀~"
그년은 말로만이 아니라 아예 몸을 들어 허리를 숙이곤 내 몽둥이를 잡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년의 몸부림을 무시한 채 난 다시 고개를 아래로 내려 무성히 솟아있는 수풀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고, 혀를 내밀어 수풀을 쓰다듬듯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년의 몸놀림은 점차 격렬해져 가고 있었다. 몽둥이를 받아들이길 단념했는지 이젠 그년이 내 머리를 아래로 밀어 내린다. 내 입술은 그년의 계곡을 피해 허벅지로 옮겨가고 허벅지 안쪽 사타구니까지 혀로 쫙 훑어 내렸다. 그년은 다리를 잔뜩 오므려서 내 볼이 그년의 계곡에 닿게 하고, 그리고 그년은 볼이 마치 몽둥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볼을 자신의 계곡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양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아~하~ 시발~ 도대체 왜 이러는데? 좀 시원하게 쑤셔줌 안 돼?"
"……."
"자기야 제발~ 나 미치겠단 말이야."
"……."
"하~앙~ 개새끼야 좀 쑤셔달라고!"
그년이 미쳐 날뛰든 말든 그것은 그년 사정이고, 난 마치 그년의 약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듯 고개를 아래로 내려 무릎으로 혀를 이동하고 다시 그년의 발끝까지 입술을 옮겼다.
"거긴! 자기야~ 거긴 더러워! 아~흑!"
엄지발가락을 입에 가득 물자 그년이 바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이년 역시 발가락이 예민한 년인가 보았다. 발가락 하나하나 그리고 그 발가락들 사이를 닦아내듯 꼼꼼하게 애무하면서 난 그년의 엉덩이를 꽉 쥐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항~ 여보야~ 좋아~"
잔뜩 비음 섞인 신음이 그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난 서서히 반대편으로 옮겨가 위쪽으로의 탐험을 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년의 계곡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허벅지를 건너뛰고 바로 그년의 계곡에 입술을 덮고 혀로 그년의 계곡입구를 쑤셨다.
"하~악! 아~~~~~~~~~~~~~~앙!"
혀로 계곡을 자극하면서 손가락 하나를 안으로 서서히 밀어 넣기 시작하자 그년은 미친년으로 변해갔다. 몸의 떨림이 과격해지고, 엉덩이는 연신 들썩이며 자칫 손가락이 그년의 질 내부를 상하게 할까봐 걱정이 될 정도로 그년의 반응이 격렬해지자 난 그년의 몸 위에 내 몸을 실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몽둥이는 그년의 깊숙한 계곡 끝에 다다랐다.
한동안의 격렬한 정사가 끝나자 그녀는 발갛게 된 볼을 내게로 돌려 배시시 웃고 있다.
"자기 참 나쁘다."
"뭐가?"
"사람을 그렇게 애태우는 법이 어디 있어?"
"문디. 그래도 좋다고만 하더니만."
"그래도……. 나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야."
"암튼 좋았잖아."
"응. 정말 좋았어. 지금까지 오늘처럼 좋아본 적이 없어."
"김 차장이 잘 안 해주는 모양이네?"
"신랑은 자고 있을 때 혼자하고 내려가는데."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남자가 많았나? ㅋㅋ"
"아니 신랑 말고는 서 비서, 딱 하나 밖에 없었어."
"뭐? 서 비서???"
"아냐. 자기야 아니야. 내가 말이 헛 나온 거야. 아니야."
좆 됐다, 진짜 좆 된 상황이다. 도대체 이 여자와 몸을 섞은 자체가 내겐 큰 문제인데 사무실의 후배와 구멍동서가 된 상황이라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면 그거야 어차피 내 여자도 아니니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상황은 정말 아니었다.
"나 담배 좀 피고 올게."
"그냥 여기서 피면 안 돼?"
"니 서방 담배 안 피우잖아. 담배 안 피우는 사람들 담배 냄새 엄청 예민해."
"자기 금방 올 거지?"
난 대충 바지를 챙겨 입고 셔츠만 걸친 채 복도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몸을 섞기 전 일이라면 그 순간 모든 것을 중단하고 없었던 일로 할 수도 있고, 만약 저 여자가 미쳐 날뛴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황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할 여지는 남아있으련만 이미 몸을 섞은 이후이니 나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두 개비의 담배를 다 피울 동안 나의 어리석음이 느껴진다. 도대체 아무리 심심하고 외롭다 하더라도 나같이 돈도 없고, 그렇다고 잘 생기지도 않은 사내를 저 여자가 선택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것을 내가 간과한 것이었다. 멍청한 놈!
담배를 피우고 방으로 돌아가니 그 여자는 이미 몸을 씻고 다시 자리에 누워있었다. 가만히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자기 그게 그렇게 힘들면 끝내. 그냥 지나가는 여자 하나 따먹었다 생각하면 되잖아."
여자 입에서 나오기 힘든, 소위 젊었을 때 사내들끼리 하는 그 말이 튀어나온다.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저질렀으니 내가 책임져야지."
"……."
"아무튼 나 힘드니까 조금만 그냥 있어줄래?"
"응. 자기야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이 참 쉽게도 나왔다. 하긴 처음 보는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도 여자들은 그 순간 사랑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만이라도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이유에서인지 섹스를 하는 그 동안에 수차례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는 여자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사랑한다는 말은 생경하게 다가왔다. 하긴 더 이상 내게 방법은 없었다. 이미 몸을 섞은 이상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까.
지금 와서 내가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은 그년이 상처를 받든 말았든 당시에,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 그년의 말처럼 그냥 길 가는 여자 하나 따먹었다고 생각하고 그날 깨끗하게 정리를 했었더라면 오늘의 이런 비극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란 후회가 밀려온다. 그녀가 뱀이었든 사탄이든 이미 난 선을 넘어 버렸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깊고도 깊은 선을…….
이젠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여자. 결국 난 이불을 들추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나에게 몸을 붙여오면서 나를 가만히 안아왔고, 나도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딪쳐갔다.
"자기야 미안해."
"됐어. 그 이야긴 그만해. 그냥 앞으로는 다른 남자 만나지 마."
"안 만나. 그날도 같이 술 마시다가 얼결에 그렇게 된 거야."
"밤에 외간남자하고 술은 왜 마시는데?"
"그냥 사무실에서 나가면서 술 한잔하자고 하기에 따라간 거지."
"아무튼 이제 그 소리는 더 이상 듣기 싫으니까 그만해. 앞으로 다른 남자들 정리해."
"다른 남자 없어. 다 끝났어. 그러니 신경 쓰지 마."
"그 말만 지켜. 그럼 나도 당신 배신 안 해."
"알았어. 자기야 사랑해~"
결국 다시 한 번 처절할 정도의 정사를 치르고 우린 모텔을 나섰다.
"자기 저녁 먹어야지?"
"응. 그래 뭐 먹을래?"
"자기 삼겹살 좋아한다면서?"
결국 그녀와 난 국도를 타고 사상으로 들어와 '샛별'야학 건너편의 삼겹살집에서 삼겹살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녀는 소주 한 병을 반주삼아 넘기고…….
그녀를 집에 태워다 주고 난 그냥 이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속이 편하지 않아 송정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항상 내가 가는 46번 자리 그 곳은 비어있었다. 그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길 했지만 속은 잔뜩 뒤틀려있었고, 또 앞으로 어떻게 오늘의 이 일이 전개될지에 대한 고민으로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 되어있었다. 아무리 오는 여자 막지 않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활신조처럼 되어있지만 오늘 청아의 건은 아무리 생각을 거듭 해봐도 내가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 내 앞에 나타나더라도 부딪쳐 싸우면 될 일을. 기껏 해봐야 간통으로 피소되어 망신을 당하거나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어차피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책임져야 하니 그다지 억울할 일도 없겠다 싶었다.
바다 저편이 붉게 물들어 온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는 모양이다. 고민 덕분에 뜬 눈으로 밤을 새고, 편의점에서 찬 커피를 하나 사 입에 털어 넣고선 집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일은 무슨 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게 내 생활인데."
"당신 얼굴이 좀 어두워서 그래요."
"그냥 좀 피곤할 뿐이야. 밤 새웠거든."
"건강 생각해가면서 일해요. 월급도 주지 않는 일을 뭐 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어허~ 아낙이 사나가 하는 일을 가지고 아침부터."
"당신은 말만 딸리면 사나가 어쩌고 하지만 누가 당신처럼 돈도 안 되는 일에 그렇게 열심인 사람이 있어요?"
"야 이 사람아.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일도 많아."
"그거야 그렇지만 진영이와 나는요?"
"그래 그건 내가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 난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 것은 아니잖아요. 당신이 건강해야지 진영이나 나나 안심을 하죠."
"알았어. 내가 알아서 몸 잘 챙길게. 미안해."
"미안해 할 일은 아니잖아요. 어차피 당신 정치판 떠나지 못한다는 거 알고 결혼했는데. 그냥 잠이나 자가면서 일해요. 그것만 해주면 돼요."
"알았어."
아침부터 집사람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었다. 소위 말하는 바람이나 피우고 온 주제에 집사람이 걱정하는 말을 들으니 참 표현하기가 힘든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내가 참 나쁜 놈이다. 집사람이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집사람과 딸아이의 배웅을 받으면서 집을 나선다. 또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까.
"어! 아침에 웬 일이야?"
"자기 왜 톡에 답도 안 해줘?"
"응? 언제 톡 보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더니 휴대폰은 배터리가 완전히 나가 아예 죽어있었다.
"어. 미안해. 휴대폰 배터리 다된 줄도 몰랐네."
"난 자기가 나랑 헤어지고 나하고 끝내려고 톡 확인도 안하는 줄 알았단 말이야."
"임마 끝을 내려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지 톡이나 받지 않고 그럴까?"
"암튼 나 자기랑 사무실에 같이 있을래."
"사무실서 니가 뭐 하려고?"
"그냥 휴대폰으로 게임도 하고, 심심하면 뜨개질이라도 하면 되지."
"누가 오면 뭐라고 할래?"
"그냥 놀러왔다고 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어차피 요즘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 없잖아."
"알았다. 당신 알아서 해."
"응."
결국 그날 이후 아예 사무실에 출근하여 상근하는 것처럼 행동을 했다. 이전에 지은이가 그랬었던 것처럼……. 매일 남편이 출근을 하고나면 사무실에 나와서 청소를 하고, 내가 출근하면 커피를 타서 가져다주고…….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길들여져 갔다.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디어 '나쁜 여자'가 출판되었다.
'한 정치인의 비서가 겪은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이용한 한 여자의 추악한 욕망'이란 부제를 달고 내가 쓴 원고가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청솔출판사의 석 대표는 내 부탁을 철저히 이행해 주었다. 책 내용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석 대표와 강 변호사가 알아서 대응하기로 했으니 내 식구들이 걱정할 일은 없었다. 난 식구들에 대한 걱정 대신에 그냥 책이 많이 팔려서 집사람이나 어머니 동생과 내 딸 진영이의 통장에 조금이라도 많은 돈이 차곡차곡 쌓여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서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집에서 끌어다 쓴 그 돈이라도 내가 갚을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뿐이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어야 하고, 그 이별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니 내가 좀 더 빨랐을 뿐.
'나쁜 여자'가 서점에 깔리자 석 대표의 활약 덕분인지 언론에서는 연일 '나쁜 여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뉴스에서 빠지지 않았다. 또한 서점의 매대도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당분간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하게 될 분위기였다. 이 책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그년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결국 그년은 내게서 얻어간 그것 뿐 아니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그 모든 것들 또한 잃게 될 것이다.
"개새끼. 내가 뭐 그렇게 죽을 짓을 했다고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해."
그년은 자신의 집에서 소주를 들이키며 내게 욕을 해댄다. 이미 거실바닥에는 소주병들이 몇 개 뒹굴고 있었고 그년의 딸들은 자신들의 방 안에서 지 에미의 넋두리를 듣고만 있었다.
"개새끼가 줄때 잘 먹었으면 그냥 고이 뒈지지 나를 왜 엮고 지랄이야."
그년은 내가 원망스러운지 소주 한잔을 입에 붓고 욕을 하고, 또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고 욕을 하는 그것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긴 제 년 입장에서도 억울한 생각은 들겠지. 멍청한 놈이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충분히 이용할 것 다한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판을 완벽하게 깨놓았으니 억울했을 것이다.
이제 그년의 삶은 완벽하게 파괴되었다. 남편인 김 차장은 아예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렸고 둘 있는 딸아이들조차 자신의 엄마의 치부가 세상에 낱낱이 공개되자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두려워하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편인 김 차장이야 자신의 마누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하지만, 두 딸이 걱정이다. 저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지 에미의 난잡하고도 추악한 행동들의 결과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일 결혼을 하는데 있어서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니, 김 차장이 빨리 이혼을 하고, 딸아이들을 자신이 키우는 것으로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미 육신이 없어진 내가 그 말을 김 차장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그년의 두 딸들에게 미안하다. 하긴 내 사랑하는 딸 역시 그년 덕분에 애비를 잃었으니 마찬가지인가?
"와~ 뭐 그런 년이 다 있어? 그년 그거 인간 맞아?"
"그런 년을 구의원이라고 뽑아 준, 그 동네 사람들 쪽팔리겠다."
"아니. 그 박진호인가 하는 사람이 또라이 아냐? 어차피 지도 좋아서 여자 따먹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건 아니지. 청라인가 뭔가 하는 그년이 완전히 순진한 남자를 이용해 먹었구먼."
"당한 놈이 잘못이지. 요즘 세상에 그렇게 순진하게 살면 바보소리 밖에 더 들어?"
세상은 '나쁜 여자'로 인해 시끌시끌해졌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언쟁을 하고, 여자와 여자도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집사람은 기자들의 등쌀에 아예 집을 옮겼다. 하지만 진영이가 전학한 학교에 까지 기자들이 찾아와 결국 강 변호사가 나서서 그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한 공무원에게 법적인 제제를 가하자 기자들은 집사람과 진영이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그 대신 기자들은 내 일의 법적 대리인인 강 변호사와 청솔출판사의 석 대표를 끊임없이 찾아 다녔고, 석 대표는 본연의 임무인 책을 많이 팔기 위해서 적당한 각색을 해가면서 까지 나와 그년의 관계대해 약간씩 흘리기 시작했다.
'나쁜 여자'가 이슈의 중심이 되자 정치권에서도 더 이상 그년에 대한 보호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살아서 내가 소속되었던 OO당에서도 당 윤리위원회를 열어 그년을 출당조치 하게 되었고, 구의회에서도 제명조치를 결의했다. 물론 이때다 싶었는지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공천과정에서 있었던 비리에 대한 재조사를 착수하고, 심지어 선거과정에 불법이 없었는지에 대해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이젠 그년은 완벽히 끝이 났다. 굳이 제명이니 선관위의 조사니 그런 것이 아니어도 추문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정치판에서는 완벽히 매장되는 일이 다반사이니 어떻게 구의원입네 하고 얼굴을 들고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인가?
"형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자네 계속 데리고 살 수 있어?"
"모르겠습니다. 그냥 박 진호 그 새끼하고 바람만 피웠다고 한다면 몰라도, 서 비서 그 새끼하고도 그랬다고 하고, 거기에다 박 진호 그 새끼하고 잤던 이유가 그 새끼를 이용해서 구의원이 되려고 그랬다고 하니 미친년으로 밖에 다른 생각이 안 듭니다."
"데리고 살 자신 없으면 헤어져. 아니면 아예 자네나 그 여자 아는 사람이 없는 시골에 들어가서 살든지."
"휴~"
"헤어질 거라면 빨리 헤어지는 게 좋네. 그게 자네나 아이들에게 좋아."
"예. 진짜 이제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질 못 하겠습니다."
"당분간은 힘들 거야. 자네도 걱정이지만 아이들이 걱정일세.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일단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딸애들이라 사무실서 재울수도 없고 걱정입니다."
"일단 마음 결정하고 나면 빨리 처리하는 게 서로에게 좋네."
"예. 형님."
결국 김 차장은 이혼을 하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것이 김 차장 입장에서 자신이 살고 자신의 딸 둘을 살리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그년은 완벽한 외톨이가 되었다.
그것도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까지 받으면서.
'자기 어디야?'
'응. 지금 경주.'
'재미있어?'
'그냥 지금 밖에 담배 피우러 나왔어. 집사람하고 진영이는 방에 있고.'
'언제 올 건데?'
'내일 간다고 했잖아.'
'나 자기 보고 싶단 말이야. 잠시 와서 얼굴만 보고 가면 안 돼?'
'또 왜 그래?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나 미치겠어. 자기가 그 여자랑 당정하게 지낸다고 생각하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서로 가정사에는 관계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냥 잠시만 왔다가 가면 안 돼?'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만 하자.'
우연찮게 호텔 숙박권을 하나 얻어 휴가 겸 경주에 왔는데 그 사실을 알고 갈등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소유욕이 강한 여자였기에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짜증이 난다. 결국 톡으로 하다가 안 되어 전화를 해서 달래보았지만 도대체가 단념을 하질 않는다. 진짜 더럽게 물린 상황이다.
전화를 겨우 끊고 방으로 올라가 집사람과 진영이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전화다. 집사람 앞에서 받기가 곤란했기에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왜?"
"자기 뭐하는데?"
"지금 밥 먹으러 내려왔어. 집사람 옆에 있어 곤란하니 전화는 하지 마. 내일 부산에 가서 전화 할게."
내말에 그녀가 화가 났는지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난 톡으로 '미안해. 부산에 가서 보자.'란 메시지를 남기고 식당으로 돌아왔다.
"당신 무슨 전화야?"
"응 별거 아냐. 밥 먹는데서 받기가 좀 그런 전화라서."
"여자 전화는 아니고?"
"여자 전화 맞아. 지역구 당원인데 좀 골치 아픈 여자다."
"당신 믿지만 혹시 엉뚱한 일에 휘말리는 일은 만들지 마."
"이 사람이. 내가 어디 한둘 먹은 애기인줄 아나."
"아무튼."
"쓸데없는 말 그만두고 밥이나 먹자."
저녁을 먹고 우리가족은 유홍준 교수가 극찬을 한 진평 왕릉에서 달을 보기위해 진평 왕릉으로 향했다. 봉분이 크다는 것 이외에는 그리 특별한 장식조차 없는 왕릉은 내 마음에 평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언제 나도 이 자리에서 유홍준이 본 그 달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