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국 - 상편
추국
추국근 세 달만에 이 곳에 들어 오게 되었읍니다.
아직도 제 이름을 기억 하시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읍니다.
예전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들어 왔었는데
어쩌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러 갔군요.
중편을 구상하고 글을 올립니다.
별로 재미가 없더라도 이해 하시길 바라며...
========================================================================
현수는 오늘도 퇴근하는 길에 집 부근 골목에 차를 대어두고 집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최근에 자주 들리게 된 술집에 가기 위해서다.
때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우산을 받쳐 들지 못한 현수의 머리와 어깨위로 가을비가 내려 앉는다.
가게에서 우산을 사서 쓸 수도 있지만, 구태여 비를 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어느 새 현수의 옷은 축축이 젖어 든다.
*********************************************************************
약 한달 전에 회사 직원들과 회식 후 조금 늦은 시간에(밤 열한시가 조금
지났을까..) 술이 얼큰하게 된 상태에서 귀가를 하다 불현듯 술을 한잔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동네 부근에 있는 한 술집에 들리게 되었다.
이 동네에 살게 된지 이년이 조금 지났지만, 그 동안 현수가 살던 동네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었다.
술을 즐기는 편이고 노래를 좋아하는 현수지만, 웬 지 집과 가까운 곳에서는
술을 마시기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이다.
술을 마시고 풀어진 상태에서 혹시 안면이 있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비칠 것이고, 생활태도가 난잡한
총각이라고 낙인이 찍혀서는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대리운전 기사에게 집 부근의 골목에 차를 대게 한 뒤 돈을 지불하고
집과 반대방향으로 골목길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골목길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오분 정도 걷다 보니 길가에 ‘추국’ 이라는 간판이
조명에 번쩍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
추국이라면 가을 국화란 말인가? 저기로 한번 들어가볼까?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술 냄새와
어우러져 코를 톡 쏜다.
실내는 그리 넓지 않은.. 약 스무 평정도가 될까?
여덟 개 정도의 좌석이 칸막이로 되어 있고 두세 군데의 좌석이 비어 있다.
가운데 홀에는 중년의 남자가 조금 젊은 여자를 끼고 감정을 잔뜩 잡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보통 실력은 넘는 것 같다.
좌석을 정하고 앉으니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한 여자가 오더니 맞은 편 자리에
앉아 말을 건넨다.
“맥주 드려요?”
담배를 피워 물다가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보니, 나이가 사십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인상이 뭐랄까? 고향에 있는 큰 누님 같은.. 아주 푸근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
물론, 현수에게는 누님이라고는 없지만..
젊었을 때는 한 인물 했을 것 같은데 이제 나이가 들어 얼굴에는 잔주름이
잡혀 있고 고단한 세상사 때문인지 얼굴은 조금 피곤하게 보이는 것 같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나도 모르게 여자의 얼굴을 한 동안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아.. 아니요, 맥주 좀 주세요.”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방으로 간다.
참, 인상이 깊게 느껴지는 여자다.
잠시 후, 그 여자가 쟁반에 맥주와 안주를 들고 와서 테이블에 내려놓고
앞 자리에 앉아 맥주를 따라준다.
내가 맥주병을 들고 여자에게 맥주를 한잔 따른다.
서로 맥주잔을 들고 한잔씩 마신다.
여자가 내게 말을 붙인다.
“여긴 처음 오는 것 같은데?”
“예, 처음 왔어요.”
“나이가 젊게 보이는데.. 스물 여섯? 아니면, 일곱?”
여자도 이미 한잔 되었는지 얼굴이 붉으스럼하고 자세가 조금 풀린 것 같은데다
커다란 눈에는 장난기가 어려있다.
“스물 여섯이에요. 아주머닌요?”
나도 이미 술이 취한데다 앞에 앉은 여자에게 친근감이 느껴져 스스럼없이
말을 한다.
“나? 몇 살같이 보여요?”
“제 큰 누님 뻘 정도로 보이는데요?”
“그 보다는 조금 더 되었을걸?”
“그래요?”
내가 그녀 앞에 놓인 빈 맥주잔에 맥주를 따른다.
그녀 역시 내 잔에 맥주를 채워준다.
내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여자에게 말을 한다.
“여기 마담이에요?”
“그래요, 그런데 여기에 젊은 총각은 잘 오지 않는데.. 나 같은 퇴물들이나 오지..
참, 결혼은 했어요?”
“아뇨, 아직 어린데 벌써 결혼을 해요? 그런데 퇴물이라니.. 아직 한참이신 것
같은데요? 얼굴도 고우시고..”
“호호호!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기분은 좋은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꽤 마신 것 같다.
마담 역시 꽤 취한 것 같고..
마담이 혀가 조금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을 한다.
“총각, 노래는 안 해?”
현수는 이제 스물 여섯의 나이에 재 작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해서 이 동네에서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다.
현수의 고향은 지금 현수가 살고 있는 B시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J읍이다.
물론 지금 그 곳엔 현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현수의 부친은 현수가 군대에 있을 때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모친은 인근의
M시에서 재가를 해서 살고 있다.
현수의 모친은 생모가 아니다.
현수의 생모는 현수가 네 살 때인가.. 부친과 이혼을 해서 집을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분이 왜 이혼을 하셨는지 현수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부친께서 그 것에 대해 말씀을 안 하시니까..
“사람이 물어보는데 대답도 안하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예?”
“호호.. 이 총각 봐? 꼭 어디 홀린 사람처럼..
노래는 안 해?”
“아.. 예. 노래 해야지요.”
“잠깐만.. 노래책 가져올게..”
어느 새 말투가 반말이 되어 있지만 별로 마음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만만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운터로 가더니 노래책과 메모지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놓고는 다시 내 앞 자리에 앉는다.
현수가 노래책은 펼치지도 않고 메모지에 노래 몇 곡을 적어서 마담에게 준다.
“이 총각.. 노래 많이 해봤나 봐? 노래책은 보지도 않고 저절로 노래 곡목이
나오네?”
“그냥.. 좋아하는 노래가 몇 곡 있어요..”
현수는 평소 즐겨 부르는 트로트 곡을 몇 곡 적어서 마담에게 준다.
마담이 노래 곡목이 적혀 있는 쪽지를 보더니
“아니, 아직 한참 젊은 총각이 청승맞게 무슨 트로트 노래를 불러?
신나는 댄스 곡이나 부르지..”
“전 트로트 노래가 좋아요.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 왜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들 있잖아요? 가사 중에 영어도 있고 랩도 있는.. 그런 노래들은 영 노래
같지가 않아서..”
“호호! 참.. 꼭 영감 같은 소리만 하네?”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래를 넣고, 현수도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가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마담은 옆에 서서 박수를 치며 흥을 맞춘다.
노래 서너 곡을 부른 뒤 마담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아주머니 노래도 듣고 싶은데요?”
“그래? 그럼, 한번 불러볼까?
마담이 노래를 한 곡 넣더니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다소곳이 서서 노래를
부른다.
-찔레꽃 붉게 피~던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 삼~간 그리~입습니~~다.
……………………………………………….
……………………………………………….
노래를 아주 구성지게 잘 부른다.
조금 어둡고 붉은 듯한 조명아래 노래에 열중한 마담의 옆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뭐랄까? 좀.. 슬픈 느낌이 든다.
평범하게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살지 못하고, 이런 술집을 하면서
적지 않은 나이에 뭇 남자들을 상대로 웃음을 판다고 생각하니..
서로 몇 곡씩 부르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술이 얼큰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니 몸과 마음이 다 풀어진다.
어느 새 마담은 맞은 편 자리에서 내 옆 자리로 옮겨 와 있다.
몸을 내게 바짝 붙인 상태로..
마담의 짙은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옷 사이로 느껴지는 마담의 풍만한
살집이 내 몸의 온 세포를 일어나게 한다.
내 가운데에 있는 그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빳빳이 고개를 쳐든다.
하지만, 차마 마담에게 손을 대지 못한다. 팔로 마담의 어깨를 껴안는다든지..
엄마 뻘 되는 나이 차이 때문인가?
새벽 한 시가 넘어서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담이 게슴츠레한 모습으로 말을 한다.
“총각.. 가려고?”
“시간도 많이 됐는데 가 봐야지요..”
“그래..”
마담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현수의 팔짱을 끼더니 가게 입구까지 따라 나온다.
“총각! 종종 놀러 와.”
“그럴게요..”
그 날 잠자리에 누워 마담의 요염한 얼굴과 몸에 와 닿던 마담의 풍만한 몸매를
상상하며 손을 바지춤에 집어 넣어 바삐 움직인다.
그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그 술집에 들러 마담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신다.
다른 손님들이 있어도 내가 가면 꼭 내 자리에 와서 술 시중을 든다.
아니, 내 술 시중을 든다기 보다 마담 역시 나랑 같이 술을 마시며 즐긴다고
해야 하나?
스스럼 없이 농담도 주고 받고, 같이 술에 취해 팔짱을 끼고 노래도 부르고
때로는 분위기 있는 음악에 맞춰 같이 껴안고 블루스를 춘다.
내게는 마담이 큰 누나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아니면, 애인이 될 수도 있다고 착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이십 년.. 아니, 그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 여자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