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학창물] 간 큰 고교생 - 1부
1부
“영찬이냐? 오늘 하기로 했던 조별 숙제 있잖냐. 어, 그래,
치질선생.... 아니, 지리쌤이 내준 거.”
전화 건너편의 녀석이 내게 이유를 물어왔다.
“에, 그, 누구더라? 여자애 한 명 있잖아.”
어깨 사이로 폰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대충 다듬었
다.
“아, 경희. 걔가 오늘 어디 간다고 하더라고. 뭐, 바쁘다던
데?”
성가신 녀석. 꼬치꼬치 캐묻기는.
“엉. 별 수 없잖아. 바쁘다는데. 그래, 숙제는 다음 주에 하
자. 안녕.”
-탁
폰을 닫고 주머니에 넣었다. 고개를 드니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나의 얼굴은 내 스스로보기에도 뭔가 음침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뭐, 상관없어. 거사(巨事)가 눈앞이야. 사사로운 건 그냥 재
껴도 된다구.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어!”
-씨익.
다시 한 번 나의 입가가 비틀렸다. 정말이지, 내가 보기에도
얍삽함의 극치를 보는 듯한 면상이다.
사건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2주 전.
그 당시 나는 인터넷을 떠도는 각종 H류 텍스트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런 나의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그녀였다.
“차렷! 경례.”
-반갑습니다~!
아, 저토록 빠릿빠릿하고 낭랑한 목소리라니!
우리 청솔고 2학년을 통틀어 단 3명뿐인 여성 급장 중에서
도 단연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우리반의 얼굴마담(미색을 떠
나서라도, 본연의 직책이 그러하다.) 이선경!
통칭, ‘프린세스 SK’
어깨를 조금 넘는 그 윤기 찬란한 검은 머리를 언제나 뒤로
질끈 묶고 다니는 친절한 그녀.(개인적인 취향이다.) 그 매끄
러운 검은머리에 대조적인 순백의 살결.
늘어지지도, 날카롭지도 않으나, 어찌 보면 둘 다이기도 한
아름다운 눈매. 적당히 날카롭고 오똑한 콧날이며, 작고 도
톰한 분홍빛 입술. 거기다, 그 예술에 가까운 바디라인에 정
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그 새하얀 각선미!
아아, 정말이지. 그녀를 보고 나서야 나는 이 ‘남녀공학 주제
에 대학 진학률은 무지 높은 불가사의한 고등학교’에 배정받
은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리 선생이 내준
그 숙제 하나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에에, 10분쯤 남았나? 그럼 오늘은 수행평가에 대해서 설명
하고 마치도록하지.”
뭐, 우리나라의 산과 들이 어쩌구 하던 거였는데, 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숙제는 조별 숙제다. 조는 기본적으로 4인 1조인데, 내
가 번호순으로 짜서 프린트 해왔으니 쉬는 시간에 확인하도
록. 아니, 지금 그냥 한번 불러 줄까?”
그 다음 전개를 알겠는가? 캬캬캬! 그래. 그녀와 내가 한 조
가 된 것이다! 내 번호와 그녀의 번호가 나란히 불리우자,
한밤의 문화 활동으로 H방면 활용도 300%에 이른 내 두뇌
가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지.”
나는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요구르트 묶음(한 묶음에 5병, 5
묶음 뭉쳐서 3000원이었다-라는 쓸데 없는 이야기.)을 흐뭇
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양쪽 끝을 제외한 안쪽의 세 병에는
이 어두컴컴한 쥐구멍 인생에 초신성의 빛을 터뜨려줄 정체
불명(알려고 하진마라)의 알약이 용해되어있다.
“훗훗.”
냉장고의 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식탁 의자에 앉아 어제 산
스포츠 신문을 뒤적이려는데, ‘띵동, 띵동.’하고 벨이 울렸다.
-착, 탁.
신문을 접어 식탁위에 강하게 내려놓았다.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긴장 되는 걸?”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철컥.
“저.. 여기 정훈이네 집 맞... 아!”
조심스레 문을 열자 그 틈으로 빼꼼히 그녀가 머리를 들이
민다. 그 맑은 눈망울이 어딘가 불안한 눈빛으로 안을 살피
다가 내 눈과 마주쳤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잠시 움찔 하다가, 평소 학교에서의 평판
에 걸맞은 이른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문을 활짝
열었다.
-베시시~
“어서와. 다른 아이들은 아직 안 왔어.”
그러자 그녀는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우리 집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섰다.
‘아아- 소녀여. 알고 있는가? 넌 방금 결코 되돌아갈 수 없
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네. 그러니 체념하고 앞으로의 유희를
즐겁게 받아들이게나. 음핫핫핫’
나는 속으로 온갖 지랄발광을 다하며 그녀를 집안으로 이끌
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집이 깨끗하다는 둥, 너네 부모님은
서울에 사신다며? 라는 둥, 명랑하게 재잘거렸다.
“허걱!”
그 순간 문득 거실 테이블 위에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
다. 그 ‘정체불명의 알약’의 용해액과 그것을 야쿠르트 용기
에 담는데 사용한 주사기였다.
급히 시선을 돌려 보니 그녀는 부엌 쪽을 기웃거리는 중이
었다. 후다닥 쇼파위에 던져뒀던 반팔티를 집어들어 증거물
을 둘둘 말았다.
“뭐해?”
“엇! 으, 으응?”
그녀의 목소리에 손에 든 것을 감추며 대답했다. 그녀는 잠
시 갸웃 하더니,
“흠. 역시 남자 혼자 사는 집은 지저분한거구나?”
“뭐......”
말꼬리를 늘이며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았다. 내 등 뒤
에서 삐져나온 반팔티부터 쇼파 위에 널부러진 팬티, 교복
따위의 옷가지들.
“...혼자 살다보니 이런 건 별 수 없네. 하, 하하하하.”
“그래도 정리정돈은 잘 해두는게 좋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쇼파에 앉았다. 검지만 살짝 세워서
팬티 등등의 옷가지들을 옆으로 밀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위험했다. 아니, 뭐. 들켰다고 해도 그게 뭐에 쓴 물건
인지는 몰랐으려나? 주사기라... 사춘기 고딩이 주사기를 사
용할 곳이라면.... 음음, ‘약’인가?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군.
“잠깐만 기다려 ‘마실 것’ 좀 가져올게.”
“와아~ 친절하네?”
“뭐, 정에 굶주린 남자란 모두 그런 법이지.”
“헤에? 그런 거야?”
“후훗.”
부엌으로 가는 길에 있는 거울에 예의 그 미소가 비쳤다. 나
는 손으로 입가를 꾹꾹 눌러 멈춰지지 않는 그 미소를 달래
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It`s Show time.”
맞춤법의 옳고 그름은 잠시 묻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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