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 프롤로그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세상은 불공평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나이 17살, 고1이면 다들 한 번쯤은 여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개중에는 그렇게 요즘 떠들어대는 청소년 성문화 문란에 일조를 하면서 산다. 그에 비해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친구는 커녕 여자가 호감을 보인 적 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요세는 중딩을 지나 초딩들도 '한국의 성문화 어디가지인가?' 라는 타이틀을 달정도로 온갖 짓거리를 다 한다. 어른이라고 나이 쳐먹은 것들은 또 꼴에 회춘한답시고 어린 애들 한테 돈줘가면서 그 짓을 못해 안달이다. 이대로 가면 이 불행한 중생이 결혼할 때 쯤에는 처녀가 씨가 마를 것이다.
"하아."
아아 통제라. 이 고귀한 입에서 한숨이 나오다니… 이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는가…….
"어이~."
퍼억!
"컥!"
등으로 부터 전해져 오는 이 강력한 파괴력. 이것은 필시 죄없는 어린 양을 항상 괴롭히는 옆집 누님일 것이다. 안 봐도 알 수 있다. 등에 통증이 느껴지기 이전에 폐를 뚫고 텨지는 이 관통력 있는 이 펀치는 평소 무술과 K-1을 보며 때때로 살아있는 인간에게 연습해온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펀치다.
역시나 잠시 유체이탈을 경험한 나의 앞에 하얀 면티와 청바지 차림을 한 누님이 나타났다.
"오버하지 말고 일어나. 그거 맞는다고 죽냐?"
어쩌면 이 사람은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순간적으로 동공이 열리고 제어에서 벗어난 안면 근육이 뒤뜰리며 풀어진 입에서 침이 흐르게 하는 그 펀치의 위력을 모르는 걸까?
"오버가 아니라니깐! 진짜 사람 죽일 일 있어?!"
"아아, 씨끄러워. 그건 그렇고 너 할 일 있냐?"
불길하다. 불길하다. 그리고 또 불길하다. 분명 나를 끌고 가서 무언가 엄한 일을 시키려는 것이다. 이 악녀(惡女)에게 7년 간 맞으면서 배운 것은 이런 말을 할 때는 최대한 거짓말을 잘해서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아, 그게 오늘은 숙제가 좀 많아서……."
"제껴."
아니 이건 사실이다. 한문 숙제와 영어 숙제가 겹치는 바람에 한자를 2천자 써야하고 영단어를 4백자 써야한다. 참고로 한자 선생과 영어 선생 둘 다 그리고 좋은 선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니 진짜 시간 없다니까?"
"닥치고 따라와."
"……."
어머니. 불초 소자는 오늘도 제시간에 집에 못 가고 옆집으로 끌려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항력이니 항상 대문 앞까지 왔다가 납치 당하는 이 불효자를 너무 탓하지 마시기를…….
언제나 옆집으로 납치 당할 때 생각한다. 세상은 역시 불공평하다고.
어떻게 같은 동네, 그것도 바로 옆집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까? 우리집은 땅값만 좀 나가지 집 자체는 서민적인데 이 악녀의 집은 무려 3층이다. 다락방까지 따지만 4층. 방만 해도 거실, 부엌 제외하고 8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사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4인 가족의 집이 3층에 방이 거실 제외하고 8개?! 바로 옆집인 우리집이 3인 가족에 방은 거실 포함 3개인데?!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궁금하다.
"다녀왔습니다~."
그렇게 상큼발랄하게 인사하지마라. 누가 들으면 귀여운 소녀인줄 알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키 172cm에 달하는 25살 여대생의 저 압박적인 인사를 듣을 사람이 지금 이 집에 없다는 것이다.
이 집에 납치 당하는 것은 일주일에 약 5번. 근데 이 집 아저씨, 아줌마를 본 것은 지난 한 달 동안 3번이다. 역시 돈 잘 버는 맞벌이 집은 그런 모양이다.
……. 생각해보니 이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은 전혀 다행스러울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고립무원이다.
"올라가자."
꿀꺽
제발 이번에는 RKO 연습이 아니길 빈다.
* RKO란?
WWE에 레슬러 렌디오튼의 피니쉬 무브. 어깨 위로 상대의 목을 감고 등으로 떨어지는 기술로 자신은 등으로 떨어지지만 당하는 상대방은 상대의 어깨와 팔에 목이 끼인 채 배로 떨어진다. 충격 에너지가 목으로 전달 되어 전신 신경계에 쇼크를 주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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